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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 사찰

속리산 법주사

by 바람- 2011. 10. 31.

 속리산 법주사

A.D. 553년(진흥왕14년)의신 스님에 의해 창건된 이후, 776년 진표 및 영심 스님 대의 중창을 거쳐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8차례의 중수를 거듭했던 법주사는 조선조 중기에 이르러스는 60여동의 건물과

7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로써 위용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절의 거의 모든 건물이 불타버린 결과, 1624년(인조2년) 경에 이르러

벽암스님에 의해 또다시 중창을 거듭하였고 1851년에는 국가적 규모의 중수작업이 진행되기도 하였던 등

그 뒤 수차례의 중건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상전이라 불리는 1기의 목탑과 더불어,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용화전,원통보전,명부전, 능인전,조사각,

진영각,삼성각,등 8개의 전각과 일주문,금강문, 사천왕문,종고루, 부도전 등 5개의 부속건축,그리고

선원, 강원, 염불원 등 3개의 원이, 또한 염화당, 용화당, 미룡당, 응주전, 사리각, 종무소를 포함한

10여 개의 요사채들이 남아 있어, 도합 30여동의 건물이 조성되어 있다.

 

법주사는 미륵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석가모니불이 멸한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나 우리가 사는 염부제인 지상에 내려와서

바라문의 여자 범마파제에게 잉태되어 마침내 부처가 된 미륵은 용화수 아래에서 세 번에 걸쳐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행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용화삼회 라고 한다. 인간은 일심으로 미륵을 믿고 철저히 수행하고 선근을 쌓아서

용화삼회의 설법에 참가하여 구원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미륵의 신앙이다.

 

진표 율사가 금산사에 이어 법주사를 제2도량으로, 금강산 발연사를 제3도량으로 창건하였는데

이는 용화삼회 설법도량을 표시한 것으로 표시할 수 있다.

공민왕11년에는 임금이 법주사의 불은에 감격하여 통도사에 칙사를 보내어 불사리를 옮겨다가

현재 수정봉 및 능인전 뒤에 사리탑을 조성, 봉인하였다고 한다

또한 세조는 당시 법주사에 주석하던 신미,학열,학조 선사등을 인견하고 법주사와 속리산 내의

사찰을 일신토록 하였다고 한다.

 

법주사는 신라시대에 처음 법등을 밝혀 기나긴 세월의 발자취를 절 안팎의 수많은 유물과 유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고 있는오늘날 이땅에 미륵 신앙의 요람이라고 일컬어진다.

 

 

 

 

 

 

 

 

 

 

 

 

 

 

 

팔상전  국보 제55호

 

 

 

 

 

 

 

 

대웅보전과 쌍사자 석등

 

 

 

 

 쌍사자 석등

 

 

 

 

대웅전

 

 

원통보전

 

 

 

 

 

진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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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문장대를 갔다가 내려오면서

관람한 법주사...

예전에 속리산 천황봉 ~신선대 ~ 문장대를 거쳐 법주사로 산행을

했었는데, 그 때는 산행 목적이라 시간 제한으로

여유있게 관람하지 못했다

유서깊은 절이라인지...

 단풍철에 즈음하여

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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