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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서울.경기도

남한산성 둘레길 2019. 3. 10.

by 바람- 2019. 3. 11.

남한산성

 

                         남한산성 둘레길

 

 

 

 

남한산성 둘레길

 

2019.  3.  10.

 

한국체육진흥회 회원들과....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 동문 - 동장대터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영춘정

                           - 남문 -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남한산성-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기원은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672)의 옛 터를 활용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대대적으로 구축하였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지형적으로 

평균 고도 해방 480m이상의 혐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곳으로,

둘레가 12km레 이르며 산위에 도시가 있을 수 있을만큼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백성과 함께 왕조가 대피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곳)였습니다. 

또한 남한산성은 성곽을 쌓는 축성술 면에서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계속된 전쟁을 통해 동 아시아의 한국(조선), 일본(아즈치.모모야마시대),중국(명나라/청나라) 사이에

광범위한 상호 교류가 이루어진 결과이다. 

이 기간 동안 유렵의 영향을 받은 화포의 도입이 이루어졌고

이런 무기 체계의 발달은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남한산성은 총 12.4km에 달하는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남한산성의 성곽을 유심히 살펴보면 돌의 종류나 성곽을 쌓은 모습이 제각기 다르다.

병자호란 등의 국제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 무기 발달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탁월한 증거이자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성곽축성기술의 모습들을 발달단계별고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남한산성은 다른 산성들과는 달리 산성 내에 마을과 종묘.사직을 갖추었다.

전쟁이나 나라에 비상이 있을 때 임금은 한양도성에서 나와 남한산성 행궁에 머무르고,

종묘에 있는 선조의 신주를 옮길 수 있는 좌전은 마련하여 조선의 임시수도로서 역할을 하였다

                                                                                       ........산행안내지에서

 

 

이번달 산행은 금도도 비렁길 트레킹이었는데 하루종일 비소식이다.

금오도까지 배로 이동해야 하므로 출항은 날씨에 따라 변동이다.

여수선착장에 확인을 하니 출항이 안된다는....

그래서 다음달의  남한산성 둘레길과 코스를 바꾸어 진행한다고 했다.

서울과 경기도 지역은 강수확률이 낮12시쯤에 이슬비 정도로 내린다고 하니

비가 안 올 수도 있기에...

 

경북고속도로~영천/상주 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경기도 땅에 들어서니

하늘은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을 것 같다.

 

남한산성 중앙주차장에 하자하여 동문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간다.

오늘 트레킹은 트레킹 보다는 앉은부채를 만나기 위함이다.

동문 입구까지 도로를 걷다가 산성 둘레길을 오른다

그때부터 다리는 둘레길을 따라 걷지만,  온 신경과 시선은 숲의 바닥으로 레이져를 쏘아댄다.

오랫동안 바라기 했던 앉은부채를 만나기 위해....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의 산성 둘레길 안내도

 

 

 

 

 

동문(左 翼 門 )

 

 

 

 

 

동문을 지나 성벽 둘레길을 따라 오르는데 초반은 좀 센 비알이다.

 

 

한봉의 산성 둘레길이 건너편으로 보인다.

 

 

 

 

↓지나와서 담아보고...

 

 

 

 

 

 

 

장경사

 

 

 

제2암문

암문 :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 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16개의 암문이 있는데 본성에 11개, 봉암성에 4개, 한봉성에 1개가 설치되어 있다.

제2암문은 장경사신지옹성으로 출입하던 곳이다.

본성과 연결부에 설치된 이 암문은 폭이 1.3m, 높이가 1.42m로서

다른 암문에 비해 비교적 큰 편이다.

본성에 설치된 11개 암문 대부분이 문 밖에서 보면 문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홍예문이지만 제6암문과 이 암문은 윗부분이 '-'자로 만든 평거식 문이다.

또한 다른 암문은 원성 춪조시 함께 만들어져 사전에 계획된 것인 반면,

이 암문은 장경사신지옹성을 쌓으면서 신축한 암문으로 보인다.

 

 

 

 

 

 

 

 

 

동장대터 東 將 臺 地

장대 : 지취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 곳은 동장대가 있던 곳으로 성 동쪽에 있다하여 동장대라 불린다.

이 곳에는 남한산성에 주둔하던 수어장에 소속된 5영 중 좌영장을 지휘하던 곳이다.

동장대는 인조 2년 산성 수축시에 설치되었고 누각도 함께 건립되었으나 18세기 초에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중엽게 이르러 남장대과 서장대는 다시 수축하였으나 북장대와 동장대는 다시 짓지 않았다.

한봉성과 연주봉옹성의 축성으로 동장대나 북장대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군사적인 실효성이 없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산성 둘레길 보다 숲에서 걷는 것이 앉은부채를 만날 수 있을수도 있어

왼쪽으로 내려가서 짧은 길을 택한다.

 

 

 

제1군포 터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 건물이다.

중정남한지 기록에 의하면 남한산성 내에는 125개소의 군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나 현재는 한군데도 남아있지 않다.

조사결과 이 군포지는 주변보다 약간 높은 평탄한 대지 위에

징여3칸, 측면1칸의 주춧돌이 발굴되고 다수의 와면과 조총탄환이 나왔다.

군포는  목조가구로 된 건물에 기와를 얹고

토석벽을 두른 건물로 보이며 초소건물 기능에 맞게 정면은 트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에서 온돌이나 난방용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북문 (全 勝 門)

 

 

 

 

 

 

 

 

 

 

 

제5암문 (연주봉옹성)

 

 

 

 

 

 

 

날씨가 흐린 때문인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뿌옇다.

 

↓북한산 방향?

 

 

 

서문 (右 翼 門)

 

 

 

 

 

 

 

 

 

 

 

 

 

 

 

 

 

 

 

 

수어장대 (守 禦 將 臺)

장대 :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지은 건물이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장대로서

남한산성에 세워졌던 5개의 장대 중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성 안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인조2년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27년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 라는 편액을 달았다.

수어장대 2층 내부에는 '무망루' 無忘褸 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다가 귀국하여

북별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다.

현재 무망루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다.

청량당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사당은 남한산성을 쌓을 때 동남쪽 축성의 책임자였던

이회 장군과 그의 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회는 공사비를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부인 송씨는  한강에 몸을 던져 따라 죽었다.

이회는 죽을때, 자신의 죄가 없으면 매 한 마리가 날아 올 것이라 예언을 했는데

과연 날아와 그의 죽음을 지켜 보았다고 한다.

후에 누명이 벗겨지고 그가 맡은 공사가 가장 잘된 것으로 알려지자 사당을 지어

초상을 안치하고 넋을 기렸다.

원래의 청량당은 6.25 전쟁때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서장대가 있는 산 이름이 청량산이므로 청량당이라 이름 지었다.

 

 

 

 

 

 

 

 

 

 

 

 

 

 

 

 

 

 

 

 

 

 

 

 

 

 

 

 

 

 

 

 

 

 

 

남문 (至 和 門 )

 

 

 

 

 

 

4명이서 발걸을음 하다보니 둘레길에서 조금 이탈하여 앉은부채를 찾기보기가 어려웠다.

산성이라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지만 둘레길은 누구나 다닐 수 있는 산책길 같았다.

걷다보니 어느 새 남문까지 진행되고...

남문 아래 숲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지였던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주차장으로 갔다.

트레킹 총 시간을 5시간30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원점회기 하니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2시간30분이 남아 있는 터라 같이 발걸음했던 일행들과 찻집에서 기다리려고 들어갔다.

앉은부채를 만나지 못했던 마음은 왠지 너무 허전하였다.

아니 마음이 안절부절하다고 할까...

일행들에게 나는 잠시 다른곳에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고 나왔다.

인터넷 블방의 정보는 동문 동암문 밖 비탈진 곳에 있다하니 동문으로 향했다.

동문까지는 10분 정도 걸어가면 되니까...

조급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동문 입구까지 갔는데 동문 앞의 숲에서 어느 한분이 뭔가를 찾고 있었다.

혹시 앉은부채를 찾냐고 물으니 복수초가 피었는지 살피는 중이라고 한다.

나는 앉은부채를 찾고 있는데 동암문을 물으니

그 분이 앉은부채 있는 곳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되는데 알고 왔느냐고 내게 묻는다.

인터넷 정보만으로 경주에서 왔다고 하니 동암문으로 안내 해 주었다.

그 분은 앉은부채가 있는 장소를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정확한 위치까지는 안내를 하지 않은 듯했다.

그 마음을 나는 너무나 잘 헤아릴 수 있다.

장소가 알려지면 다단계처럼 발길이 이어져 그 곳은 서서히 훼손이 되어 멸종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아마도 손에는 휴대폰 카메라만 있고 혼자라서 동암문 뒤까지 안내 해 준 것 같은 느낌이다.

간절히 보고싶은 마음을 알았는지....

동암문 앞에서 뒷쪽으로 가서 잘 찾아 보라고 하고는 가신다.

동암문 뒷쪽으로 들어가니 발걸음 흔적들이 있었다.

희미한 길을 따라 헤집고 올라가니

헉.... 이제 막 올라오는 녀석이 눈에 포착되었다.

반가움에 엎들여 몇번이나 눈맞춤하고 비탈진 곳을 찾아 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포기가 있으며 분명 그 주위로 있을터인데 보이지 않아 비탈진 곳을 내려와 길이 잘 나진 곳을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니 이제 막 싹을 틔우는 녀석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좀 더 둘러보니 핀 녀석이 확 눈 안으로 들어온다.

얼마나 감동인지...

드디어 처음 대면한다.  만남을 얼마나 고대했는데...

가슴이 터질 듯한 행복함에 엎드려 얼마나 눈맞춤을 했는지....

 

  앉은부채

  산골짜기의 습기가 많은 응달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

  2~3월에 꽁꽁 언 땅을 뜷고 올라와 잎보다 먼저 꽃이 핀다.

 자갈색 얼룩무늬가 있는 타원형의 꽃덮개(불염포)속에 도깨비 방망이 모양의

 육수꽃차례가 들어 있다. 꽃이 질 때쯤 뿌리에 모여 나는 잎은 부채처럼

 크고 둥글넓적하며 잎자루가 길다. 줄기 끝에 둥글게 모여 달리는 열매는

 옥수수 열매를 닮았으며 가을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이제 막 싹이 트기 시작....

 

 

 

 이 녀석은 참 멋진 곳에 자리잡았네...

 

 

 

군락지도 보고....

 

 

꽃이 핀 이 녀석을 보고 얼마나 심장이 심쿵심쿵하덪니~~

육수꽃차례의  앉은부채 꽃